[Korea News] 변방에 있던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허지영의 한국 미술사]➁ 변방에서 ‘K-Art’로 거듭나고 있는 한국 미술 이야기한국 미술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1970년대 변곡점을 맞는다. 당시 한국은 68혁명, 베트남전 반대 등 서구가 맞닥뜨린 기운과 달리 국가 주도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시기에 한국 미술은 기존 질서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 졌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 중심으로 ‘단색조 회화’라는 집단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들은 재현의 문제가 아닌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뤘다. 이에 자연과의 조화를 한국적 정체성으로 삼고, 의도하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을 내세우며, 색채와 형상의 단순화를 추구했다. 이 같은 단색화 경향을 정헌이는 논문 ‘1970년대 한국 단색화 회화에 대한 소고’을 통해 “한국적 모더니즘이자 유신시대 사회에 대한 미학적 침묵”이라고 적었다. 70년대 한국 미술의 특징인 단색조 회화의 명암을 다룬 절묘한 표현이다.서도호(Suh Do-Ho)작가는 한국의 설치 미술가로 세계를 다니며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을 작업하면서 공간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탐구하는 설치 미술을 하고 있다.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Lehmann Maupin Gallery에서 선보인 서도호 작가의 작품. ⓒ허지영80년대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군부독재 정권은 앞선 개발독재를 이어받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집중했다. 이 같은 정치적 요인으로 한국 현대미술은 동시대 서양미술의 양식과 가치관을 온전히 수용하기에 한계가 뚜렷했다. 한편으로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은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내부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실험이 따랐다. 이에 단색화풍이 주도권을 쥔 채 다양성이 배제된 경향에 반하는 극사실화가 등장했다.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극사실화는 80년대 후반까지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 민중미술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격렬한 투쟁 끝에 민주화가 열렸다. 한국 미술계 일부 엘리트 층은 유럽과 미국 등지로 유학을 떠났다. 이들은 다양한 사조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작품 등을 배우고 체득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정체성을 찾고자 끊임없이 담론을 만들어 내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천착하기도 했다. 세계화 흐름에 맞는 작품 양식을 선보인 시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다.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함께 20세기 세계 3대 비엔날레였던 휘트니 비엔날레가 미국 밖에서 최초로 1993년 서울에서 열렸다. 백남준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또 문민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광주 비엔날레가 1995년 처음 열렸다. 1990년대 중반, 앞선 정권에 의해